이다지 강사
일본은 섬나라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권력이 중앙에 집중되기보다 지방분권적 성격이 강하며, 자연재해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자연 사물을 숭배하는 '신도' 신앙이 형성되었습니다.
일본사에서 '막부'는 사무라이들이 권력을 장악했던 시대를 의미하며, 이 시기에는 무사들이 특권 계층으로 자리 잡고 봉건 제도를 통해 지방을 통치했습니다.
에도 막부는 하극상 재발을 막기 위해 '산킨코타이' 제도를 도입하여 다이묘들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고 에도와 번을 오가게 함으로써 중앙 통제력을 강화하고 상업 및 문화 발전을 촉진했습니다.
일본은 4개의 섬으로 구성된 섬나라이며, 해안선이 복잡하고 섬으로 떨어져 있어 지방 분권적 성격이 강합니다.
지진, 해일, 쓰나미 등 자연재해가 많아 자연 현상에 대한 두려움에서 신도(神道) 신앙이 형성되었습니다.
천황은 태양신의 후손으로 여겨지며, 일본의 국기도 태양을 상징합니다.
일본은 시대 구분을 왕조가 아닌 권력의 중심지(지역) 변천에 따라 합니다.
좋은 것은 무조건 취한다는 생각으로, 강한 것을 흡수하는 문화가 강합니다.
4세기경, 야마토 지역에서 최초의 통일 정권인 야마토 정권이 등장했습니다. 초기에는 지방 세력(호족)의 권력이 강했습니다.
쇼토쿠 태자는 중앙집권과 천황 권력 강화를 위해 불교를 발전시켰습니다. 불교의 윤회 업 사상은 당시 사회 질서 유지에 기여했습니다.
백제가 일본에 불교를 전파하고 아스카 문화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나라 시대는 수도 헤이조를 중심으로 중앙집권을 추구하며 당나라 문화를 벤치마킹하여 견당사를 파견, 당풍 문화가 유행했습니다.
나라 시대 말기 수도 이전 후 헤이안 시대가 열렸습니다. 당나라 쇠퇴로 견당사 파견이 중지되면서 국풍 문화가 유행하고 가나 문자가 만들어졌습니다.
헤이안 시대 말기, 지방 분권이 강화되면서 재산을 지키기 위해 무사들이 고용되어 급격히 성장했습니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가마쿠라 막부를 열며 사무라이들이 권력을 장악하는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천황은 상징적인 존재로 남게 되었습니다.
사무라이는 특권 계층으로 성씨를 가지고 칼을 찰 수 있었으며 평민을 즉결 처분할 권리가 있었습니다.
몽골의 침입을 두 차례 태풍으로 막아낸 후 일본은 '신이 지켜주는 나라(신국의식)'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방어전으로 막부의 재정은 악화되었습니다.
무로마치 막부 시대에는 '하극상' 풍조가 만연하여 중앙 권력이 약화되고 지방 다이묘들이 서로 다투었습니다. 천황과 쇼군 간의 갈등도 발생했습니다.
하극상과 혼란 속에서 농민들이 먹고살기 어려워지자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왜구'의 활동이 빈번해졌습니다. 중국과의 무역에서는 감합 무역이 실시되었습니다.
무로마치 막부 이후 사무라이들 간의 전쟁으로 전국 시대가 펼쳐졌습니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주요 인물입니다.
포르투갈 상인에 의해 조총이 전래되었고, 오다 노부나가가 조총을 활용한 전략으로 전국 시대 패권을 장악했으나 부하의 배신으로 사망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 중 사망한 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 막부를 수립했습니다. 에도 막부는 하극상 재발 방지를 목표로 했습니다.
막부는 번주(다이묘)를 통제하기 위해 '산킨코타이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이는 번주의 자녀를 인질로 잡고, 번주가 1년마다 에도와 번을 교대로 근무하게 하여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제도였습니다.
산킨코타이 제도는 도로 정비, 에도 발전, 료칸 문화 확산 등 경제 및 문화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다이묘들의 경제적 부담 증가로 상인 계층인 '조닌'이 성장하고, 이들의 문화(가부키, 우키요에)가 사회 주류로 부상했습니다.
에도 막부는 쇄국 정책을 펼쳤으나, 네덜란드와의 무역은 나가사키의 인공섬 데지마에서 허용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서양 학문(난학)이 유입되고 국학도 발전했습니다.
에도 막부 말기, 미국 페리 제독의 내항으로 미·일 화친 조약(1854) 및 미·일 수호 통상 조약(1858)이 체결되며 개항했습니다. 일본은 세계 정세를 알고 있어 순종적으로 대응했습니다.
불평등 조약으로 인한 막부의 불만 증가로 '막부 타도' 운동이 벌어지고,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존왕양이' 운동이 확산되었습니다.
사무라이 정권이 무너지고 천황 중심의 개혁인 '메이지 유신'이 단행되었습니다. 신분제 폐지, 징병제 실시, 폐번치현, 고기 섭취 장려, 평민 성씨 부여 등의 개혁이 이루어졌습니다.
메이지 정부는 이와쿠라 사절단을 유럽에 파견하여 서구 문명을 배우고, 서구화를 '문명'으로 인식하며 아시아의 모범국을 자처했습니다.
제국주의를 표방하며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조선을 개항시키고, 1879년 류큐 왕국을 오키나와현으로 합병했습니다.
1889년 메이지 헌법이 제정되어 천황의 권력을 신성한 존재로 규정하고 군사 침략을 정당화했습니다. 이후 청일전쟁(1894-95), 러일전쟁(1904-05)에서 승리하고 타이완과 조선을 식민지로 삼았습니다.
1929년 세계 경제 대공황으로 일본은 과잉 생산 문제를 해결하고 식민지를 확보하기 위해 전쟁을 선택했습니다. 만주사변(1931)과 중일전쟁을 일으켰습니다.
1941년 진주만 기습으로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었고, 미국은 일본 본토 공습 계획을 세웠습니다. 육군 폭격기를 활용한 도쿄 공습이 이루어지며 일본의 '본토 무적설'이 깨졌습니다.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며 일본은 패망했습니다. 패전 후 연합군 최고사령부(미국)의 군정 통치 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미국은 일본을 다시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는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기 위해 천황의 인간 선언(1946)과 평화 헌법 제정으로 군사력 보유를 금지했습니다.
중국 공산화(1949)와 6.25 전쟁(1950) 발발로 동아시아 냉전 구도가 형성되자, 미국은 일본을 자본주의 진영의 파트너이자 방어 기지로 삼았습니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으로 일본은 주권을 회복했으나, 전쟁 피해국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와 배상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한국과 중국은 조약에 초대받지 못했습니다.
조약 체결 이후 일본은 자위대를 창설하고, 과거 제국주의 회귀를 주장하는 우익 세력(자민당)이 1955년부터 1993년까지 장기 집권했습니다.
1955년부터 1970년대까지 일본 경제는 연 10% 이상의 고도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엔화 가치가 상승하여 일본 제품의 수출 경쟁력이 약화되자, 일본은 내수 활성화를 위해 금리를 대폭 인하했습니다.
저금리로 대출이 용이해지면서 주식과 부동산 시장에 거품이 형성되었으나, 1990년 대출 규제와 금리 인상으로 거품이 붕괴되었습니다.
버블 붕괴로 은행들이 줄도산하고 일본 경제는 '잃어버린 10년'을 맞이했습니다. 이후로도 경제가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지만, 여전히 세계 3위 경제 대국입니다.
일본의 역사는 지리적 특성과 자연재해, 그리고 외래 문화의 수용이라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일본은 중앙집권과 지방분권 사이를 오가며, 무사 계급의 부상과 몰락, 근대화와 제국주의, 그리고 경제 성장과 버블 붕괴를 경험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흐름을 이해하는 것은 현재 일본 사회와 동아시아 관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